본문 바로가기
전체

숙소를 정하기 위해 고민하다가 내 삶의 태도를 고민하다. (치앙마이 한달살기)

by 우oㅏ 2025. 2. 4.
반응형

치앙마이 13일 차에야 느낀 자아성찰 포인트

항공권(=일정)을 확정하고 나니 그다음 떠오른 빅이슈는 바로 숙소이다. 이것은 정말 사람마다 취향을 타는 이야기다. 이 글에는 숙소 정보는 없다. 정보라기보다는 이런 사람은 저런 고민을 할 수도 있구나를 참고만 하면 좋을 것 같다.

당장 같이 사는 가족이나 여행을 같이 갈 만큼 친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눠봐도 여행의 컨셉부터 달라진다. 당장 어떤 사람은 한 달이면 유명한 호텔을 4~5곳을 돌아다니고 싶어 했다. 어떤 친구는 바로 한 달 내내 골프를 떠올린다. 어떤 사람은 유명한 재즈바와 야시장 등 유흥과 식도락을 먼저 이야기한다. 과연 나는 무엇을 좋아할까?

숙소도 여러 가지 관점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장기간 여행을 가는 경우 목적에 따라 숙소 선택도 몇 가지 유형이 있을 것이다. 물론 예산이 가장 큰 제약 조건이겠지만 말이다.

일단 숙소 자체를 여행 경험의 한 축으로 크게 중요시하는 경우다. 무조건 럭셔리를 추구한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사고자 하는 경우를 염두하고 쓴 것이다. 그래서 아래 두 가지 경우도 생각해 봤다.

- 지리적으로 스캐닝하기
치앙마이는 중심이 되는 올드시티가 거의 정사각형 모양이니 올드시티의 동서남북 쪽이나 또는 네모 모양의 각 꼭짓점 부근으로 1주일씩 4곳을 돌아다니면 한 달 동안 정말 구석구석 훑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 숙소의 유형을 섭렵하기
위처럼 지리적인 완벽함(?)보다 서로 다른 유형의 경험을 추구해 볼까도 생각해 봤다. 여행 느낌 물씬 나게 전 세계의 여행객들과 교류할 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 류 ->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올드시티 안의 호텔 류 -> 도시 외곽 쪽의 넓은 수영장과 쇼핑몰을 끼고 있는 콘도미니엄 류 -> 현지인들이 일상을 살고 있는 창푸악-싼티탐 지역의 숙소 -> 약간 럭셔리함을 추구하는 님만해민 지역의 부티크 호텔 등등으로 옮겨 다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그러다가 갑자기 시작된 자아성찰의 시간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나의 한 달 살기 목적은 무엇인가? 너무 옵션이 많을 때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그 일의 목적이 무엇인가 스스로 되물을 수밖에 없다. 여행 유튜버가 아닌 이상 어찌 보면 일생 한 번밖에 없는 기회일 수도 있는데 최대한 다 경험하고픈 맥시멀리스트로 기획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동안 긴 세월을 항상 정신없이 살아오면서, 휴가도 길어야 일주일 남짓의 휴양형 여행만 잠시 다녀온 '나'라는 사람에게 한 달이라는 시간을 들여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 일상의 루틴 + 이국적인 환경
자, 그럼 치앙마이에 놀러 간다기보다 한 달'살기'를 하러 가는 것이라서 원래 하던 좋은 습관은 루틴처럼 계속하고 싶었다. 이러기 위해선 어떤 기준으로 숙소를 정해야 했을까?

일단 평소 아침 운동 하던 좋은 습관을 유지하고 싶었다.

그런데 찾아보니 치앙마이에서 조깅을 즐길만한 큰 공원은 숙소 근처는 없어 보이고, 로드 러닝은 차와 오토바이가 너무 많고 길 건너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트레드밀 또는 수영으로 유산소 해야겠다 생각했다.

즉, 나는 일상의 좋은 루틴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 vs. 루틴은 깨지더라도 새로운 경험을 최대화하기 중에서 보통이면 후자를 선택할 것 같은데 나는 전자를 택한 셈이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생활 패턴 변화에 대해 두려움+소극적+보수적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래서 숙소의 조건으로 수영장과 헬스장이 있는 곳을 검색했다. 내가 가는 기간이 성수기에 해당 조건의 호텔은 나에게는 너무 비쌌다. 그리고 수영장도 약간 관상용인 것 같고...  

2024년 11월 말, 한 달 살기 약 2개월 전에 드디어 숙소를 예약했다. 처음에 쓴 것처럼 1주일 정도씩 지역별로 여러 군데 돌아다니기 vs. 한 곳에 숙박하기 고민이었는데 일단 한 곳에 머무르기로 결정했다.

결국 고민은 많이 했지만, 그냥 다음 조건으로 검색되는 것 중에서 골랐다.
- 내 일정에 맞는 것 (일정이 기본 이기는 한데 한 달쯤 입력하면 성수기라서 그런지 상당수가 제외되더라. 특히 성수기의 호텔류는 장박보다는 4~7일마다 바꾸는 게 잡기가 더 쉬워 보였다.
- 아침 운동을 할 수 있을 것 (수영장, 트레드밀, 근처 Gym, 근처 무에타이 체육관, 근처 요가 센터...)
- 걸어서 올드타운 접근 가능한 수준 약 1~2km 걸으면 올드 시티 진입 가능 할 것
- 그중에 후기가 깔끔하고 가격이 저렴할 것
- 각종 플랫폼(에어비앤비, 호텔닷컴, 트립닷컴, 아고다, 부킹닷컴 등등)을 모두 try 해보고 좋은 조건을 찾을 것

Tip: 몇 달 전부터 계속 숙소를 찾고 있으면 각종 플랫폼에서 광고성 프로모션을 제안한다. 그중에 생각 못한 후보가 나타날 수도 있으니, 하루에 결정할 생각하지 말고 몇 주에 걸쳐서 계속 찾아보자. 같은 숙소인데도 가격도 변화할 때가 있다. 물론 성수기에는 너무 임박해서 조사하면 가격이 계속 올라가니 충분히 여유 있게 시작하고 충분히 오래 검토하자. 그 과정이 귀찮고 힘들 수도 있으나 이것부터도 여행의 시작이다. 괜히 비는 시간에 나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 릴스를 보는 것보다 이런 숙소나 여행지 관련 영상을 보는 게 나름 힐링(?)도 되고 일이나 공부,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받을 때 '난 몇 달 뒤면 떠난다~'라는 심정으로 이런 정보를 찾다 보면 낮에 직장이나 학교에서도 상대방이 주는 스트레스가 한결 별거 아닌 것으로 느껴진다.

결국 내 경우는 흔히 싼티탐 지역이라고 부르는 창푸악 지역에 저렴한 콘도? 아파트?를 구했다. 숙소 자체가 나에게 힐링을 주는 것보다는 일종의 베이스캠프 느낌이라서 팬시한 디자인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

- 겪어보니
어느새 치앙마이에서 13일째 지내고 있다. 처음 일주일 정도는 위에서 생각한 단순한 삶 따위(?)는 어디에 갔는지, 유명하고 멋진 곳을 찾아다니기 바빴다. 마침 친구네도 여행 기간이 겹쳐서 몇 번 조우하고 그들의 스케줄을 따라서 완벽한 관광객 모드로 지냈다.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의 평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여기도 가보고 싶고 저기도 가보고 싶고... 그러려면 숙소를 옮겨 다닐걸 그랬나? 치앙라이나 빠이 같은 근교 다른 도시도 1박이나 2박으로 다녀와야 할까? 코끼리 씻기고 먹이 주고, 아침에 일어나면 만나는데도 갈걸 그랬나?

막 도파민 폭증의 시기였고 그래서 '일상생활을 명상의 도구로 삼는 미니멀리스트'는 물 건너갔다.

그런데 정신없이 일주일쯤 지나자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아주 멀리 떨어지지 않은 어지간한 관광지는 대략 절반 이상은 가봐서 그런 것일까? (야시장은 느낌이 겹쳐서 하나로 퉁피면 느낌상 한 80% 느낌) 갑자기 뭔가 새로운 곳, 새로운 경험에 대한 열망이 사그라들었다. 나쁘게 말하면 벌써 권태나 지겨움?

그런데 지겨움과는 좀 다른 게 그러면서 애초에 생각한 것처럼 일상 속의 여유로움을 조금씩 즐기게 되었다.

초기 이른바 '관광'을 다닐 때는 여유는 없었고 뭔가 조급함, 압박감, 본전 생각 등 아무튼 항상 '다음에 뭐 하지?'를 고민했던 것 같다.

그런데 최근 며칠 사이에 달라진 점이라면 평소의 나처럼 약간 일상 속에서 루틴을 따르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카페이건 밤에 숙소에서건 글을 조금씩 정리하면서 일종의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그렇다. 나는 이러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었지? 이제 생각이 난다. 디지털 노마드 코스프레를 해보니 마음이 뭔가 차분해졌다.

아마 나 같은 경우는 숙소를 옮겨 다녔으면 계속 도파민을 추구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갑작스럽지만 어찌 보면 심심한 일상 속에서 일종의 평화를 느끼면서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사실 치앙마이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삶이긴 하다. 그런데 나에게는 뭔가 시작할 계기가 필요했고 나에게는 그게 치앙마이였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