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주작과 조작, 사라진 고어(古語)가 우습게 되살아나다.

by 우oㅏ 2023. 3. 11.
반응형

주작과 조작은 다르다?

청소년과 대화 중에 어떤 주제에 대하여 이야기하다가 '그건 정말 주작 아니에요?'라는 말을 듣고는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나: 조작과 주작은 같은 뜻일까요?
 
청소년: 같은 뜻 아니에요?

반응형


나: (매우 잘난척하며...) 사실 '주작(朱雀: 붉은 새)'이라는 건 동양 종교 중 도교(道敎)에서 동서남북을 지키는 수호신이 있는데, 남쪽을 지키는 불사조나 봉황 같은 붉은 새를 말하는 거였어요. 동-청룡, 서-백호, 남-주작, 북-현무 이렇게 사신(四神)이라고 부르지요.
 
청소년: 그런데 그럼 왜 주작(朱雀: 붉은 새)이 조작(造作)이랑 비슷한 말로 쓰인 거죠?
 
나: (약간 자신 없어하며) 음... 예전에 뭔가 조작에 관한 이슈가 있었는데, 그걸 게시판에 쓰면 시끄러워져서 '조작'을 금지어/금칙어로 지정해서 그 말을 쓸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주작'이라고 발음이 비슷한 다른 말로 조롱하는 글이 유행하면서 '주작'이 지금처럼 뭔가 거짓으로 꾸며낸다는 뜻으로 널리 쓰이고 있어요. 그런데 그건 표준어는 아니니깐 글쓰기에는 쓰지 마세요. 
 
 

그런데 말입니다.

조금 지난 다음에 나도 흥미가 생겨서 사전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아니 이럴 수가 있나. '주작(朱雀: 붉은 새)' 이외에도 주작이라는 단어가 있기는 있었다.
 
조작(造作): 지을 조 + 지을 작, 인위적으로 (주로 나쁜 뱡향으로) 바꾸는 것, (사용 예: 주가조작, 여론조작, 승부조작, 증거조작) 
 
주작(朱雀): 붉은 새, 도교에서 남쪽 방향을 지키는 수호 동물 (내가 알고 있던 뜻)
 
주작(做作): 지을 주 + 지을 작, 1950~1960년대까지 쓰였다가 더 이상 쓰이지 않는 옛말로, 뜻은 없는 사실을 억지로 꾸며 만들거나 날조한다는 뜻이다. '주작부언(做作浮言)'이란 표현으로 신문에 쓰였다고 한다. (굳이 사용예를 꼽자면 없는 죄를 있다고 거짓으로 고발하는 무고죄가 주작(做作)에 해당하겠다.)
 

옛말(古語)이 부활하다?

아, 이럴 수가 있나. '조작(造作)'이 금기어가 된 것을 회피하려고 비슷한 발음인 '주작(朱雀)'을 써서 어린이~청소년들은 조작이란 의미로 알고 널리 쓰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주작(做作)'이라는 어찌 보면 더 적절한 뜻을 가진 단어가 오래전에 있었다. 
 
그래도 사실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꼴로 우연히 같은 발음인 옛말이 존재할 뿐이지 공식 문서나, 논술 등 정식 글쓰기에는 아직은 안 쓰는 것이 좋긴 하겠다. 나와 대화한 청소년에게 이런저런 사실을 다시 알려주고 단어를 쓰더라도 알고 쓰라고 해야겠다. 아... 배움에는 끝이 없구나. 
 
참고
'조작'이라는 발음도 주가조작 등에는 조작(造作)이지만, 기계조작 등 뭔가 만지고 다룬다의 조작(操作)도 있으니 적절하게 쓰자.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