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좀비, 그리고 위로

by 우oㅏ 2023. 1. 7.
반응형

부산행

SRT를 타고 부산으로 놀러 간 적이 있다. 고속 열차를 처음 타보는 어린이들은 처음에는 휙휙 지나가는 바깥 풍경에 신기해하고 서로 마주 보는 의자에서 간식도 먹고 침묵의 공-공-칠-빵! 게임도 하면서 즐겁게 잘 가고 있었다.

반응형

그러나 계속되는 비슷한 풍경에 간식은 초반에 다 털어먹었지, 중간중간 터널이 간헐적으로 계속되는 구간이 지속되자 풍경도 잘 안 보이고 슬슬 지루해질 참이었다.

달리는-기차-창밖-모습-사진
덜컹덜컹~ 덜컹덜컹~ 잠 잘 오는 소리


좀비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얼마 전에 영화 ‘부산행’을 봤던 어린이들은 고속열차+터널+지루함+상상의 나래를 펼친 결과, 그 영화가 떠올랐고 좀비가 생각나서 무섭다고 그런다. 아이들 표정이 넘 귀엽고 상상하는 게 웃겨서


"아~ 좀비? 그런데 그건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KTX라는 것이었고, 이 기차는 SRT라고 다른 기차야. 그래서 좀비가 나올 수가 없어용~ ㅎㅎㅎ"

라고 농담을 던졌는데 그 반응이...

“어? 그렇네?”
“맞네 맞아..”

어라? 바로 수긍해버린다고???



좀비-분장을-한-사람-사진
까꿍~ 무섭지~


위로

당시에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리가 통하는군.. ㅋㅋㅋ’라고 뿌듯해하며 또 다른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었다.

 

‘그런데 말이야.. 혹시 위로라는 게 원래 이런 걸까?’

 

나는 살짝 시니컬한 면이 있어서 평소에 스트레스로 힘들고 괴로울 때 해주는 위안의 말을 별 도움 안 된다며(?) 고맙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원래 위로라는 게 이해 당사자가 아닌 주변인들이 해주기 마련이고, 그러니 고마운 그들은 애초부터 해결책을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내가 이 세상의 좀비를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시시껄렁하게 KTX와 SRT의 차이점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야기해주며 두려운 존재에 집중되어 있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는 프레임 전환만 시전 한 것처럼, 사람들이 무섭고 힘들고 어려울 때 필요로 하는 위로의 본질은 이런 시시껄렁한 이야기라도 하면서 괴로운 생각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주는 곁에 있어주는 존재 자체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오늘의 결론

그동안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넸던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지 못할망정, 어쩔 땐 오히려 시큰둥했던 나의 모습을 반성한다. 고마워요.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

 

 

- 마늘맛 life -





728x90

'전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질 체력의 달리기  (0) 2023.01.09
아기가 뒹굴뒹굴하며 자는 이유, 가위눌림  (0) 2023.01.08
악몽, 투쟁-회피 반응  (0) 2023.01.07
나에게 맞는 운동?  (0) 2023.01.07
From 네일아트 To 모래톱  (0) 2023.01.0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