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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세우스의 배와 인간의 정체성

by 우oㅏ 2023.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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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세우스 배의 역설

그리스 신화의 영웅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제거하고 돌아올 때 탔던 배가 있었다. 아테네 사람들은 이 영웅을 기리기 위해 이 배를 계속 보관했고, 세월이 지나서 나무판자가 썩거나 하면 새 판자로 갈아 끼우면서 계속 유지 보수를 하였다. 처음에 한 두 개 판자를 갈아 끼운다고 해도 이 배가 '테세우스의 배'라는 정체성은 그대로 보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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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세월이 수백 년 지나서 결국엔 모든 나무판자와 기둥을 새것으로 교체된 시기가 왔다고 생각해 보자. 애초에 영웅 테세우스가 귀환할 때 있었던 배의 부품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된 이 배는 과연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일까?
 

기출 변형

우리는 전쟁이나 재해로 불타버린 문화재를 복구하는 과정을 봐왔기 때문에 사실 '사람들이 합의한 범위'에서 원래 부품이 거의 혹은 전혀 없더라도 복원된 문화재를 인정하면, 오리지널만큼의 정체성을 부여할 수 있다. 그런데 철학 분야에서는 더 파고들어 다음과 같은 기출변형도 내었다고 한다. 
 
테세우스의 배의 일부가 썩거나 고장 나서 새 부품으로 교체하는데, 원래 배에 있던 부품들을 버리지 않고 계속 모은다고 가정하자. 한참의 세월이 흘러서 고장 난 예전 부속품들은 모두 다 교체된 배가 있고, 반면에 원래 배에서 떼어낸 부품들을 버리지 않고 다 모아서 (낡고 삐그덕 거리는 잔해 수준이지만) 배를 한 척 더 만들었다면 두 개의 배 중에 어떤 것이 진짜 테세우스의 배일까? 
 
철학적으로야 복잡한 반론이 난무하는 사고실험이겠지만 현실에선 교체될 만큼 낡은 부품들은 모아봤자 배를 못 만들 것 같고, 사람들이 합의한 바에 따라 문화재 관리 주체가 '보존하기로 결정한' 배를 오리지널로 여길 것 같다. (즉, 실물보다는 사람들의 생각이 더 중요)
 

세포를 계속 갈아치우는 나의 신체, 어디까지가 '나' 일까?

테세우스 배를 수리하는 것처럼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도 자기 수명을 다하면 죽고 새로운 세포로 교체된다. 얼마가 지나면 ‘새 몸’이 되는지 말하기는 애매하지만, 인체의 세포가 교체되는 주기는 ‘평균적’으로는 80일~100일이 걸린다고 한다. 

왜 애매하다고 하느냐 하면 혈액 속의 세포들처럼 전체 ‘세포 수’는 많지만 작고 가벼우며 교체 주기가 며칠 정도로 짧은 세포들도 있지만, 반대로 세포 수는 적지만 크고 무거우며 수명이 10년 정도로 긴 세포들도 있기 때문에 세포 수로 평균을 내느냐 교체되는 질량으로 평균을 내느냐 그 기준에 따라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어서 그렇다.  
 
아무튼 넉넉하게 잡고 10년에 걸쳐 세포가 교체된 나는 10년 전의 나와 같은 사람일까? 
 
물질적인 구성 성분이 다 바뀌고, 자아 성찰의 과정을 겪으면서 비유적으로 '다른 사람' 또는  '새사람'이 되었다고 해도 사실 나라는 존재는 과거로부터 이어진 존재이고 주변 사람들도 나의 정체성을 과거부터 히스토리를 가진 '나'라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태어날 때 동일한 DNA를 가지고 태어나는 쌍둥이조차 각자에게는 고유의 정체성이 있고, DNA만 같다 뿐이지 완전 별개의 인간 개체이듯이 결국 스스로 같은 사람이라고 정체성을 기억하면 '같은 나'라고 볼 수 있겠다. 
 

다행히 뇌 세포는 교체되지 않는다. 

사실 수년이 지나면 뇌 세포까지 포함한 몸의 모든 세포가 바뀐다고 잘못 알고 있었던 시절에는 테세우스의 배와 같이 단순히 나의 히스토리를 '기억'하기 때문에 나의 정체성을 유지한다고 여길 뿐 사실은 과거의 나와는 사실상 다른 존재가 아닐까라는 상상을 했었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시간이 아무리 흐른다고 해도 인체의 모든 세포가 다 교체되지는 않는다. 소장이나 대장의 장 세포는 수명이 약 5일에 불과하여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모두 교체되어 100% 다른 장이겠지만,  뇌 세포는 유아부터 성인 시점까지 계속 자라고, 다 성장한 이후에는 이 세포들이 평생 유지되면서 새 세포로 교체되지 않는다고 한다. 
 
테세우스의 배로 치자면 테세우스 본인이 친필 사인한 '이 배는 테세우스 거'라는 현판이 있는 선장실(?)이 계속 남아 있고 나머지 부분만 다 새 판자로 계속 교체되니, 세월이 지나도 그 배를 테세우스의 배로 인정하는 셈이랄까?
 
아무튼 뇌 세포가 유지된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정체성을 생각할 때 상당히 물질적인(?) 기반을 제공해 준다. 뇌 과학에선 철학, 가치관, 정체성, 기억 등의 정신 작용을 뇌 신경세포간의 여러 가지 경로로 신호가 '연결'되는 형태의 산물로 보는데 컴퓨터로 치자면 CPU와 저장장치 하드웨어는 그대로이고 거기에 쓰이는 소프트웨어나 메모리의 내용이 계속 업데이트되는 셈이다.
 
일전에 영화 속에서 노쇠한 신체를 버리고 복제인간에게 모든 기억까지 이식하고 새 삶을 사는 설정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지금까지 논의한 바에 따르면 노쇠한 몸의 나는 사실 죽는 것이고 그냥 나와 동일한 기억을 가진 새로운 개체가 계속 사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뇌를 다치거나 치매와 같은 뇌 관련 질병이 두렵고 무서운 게, 나의 기억과 정체성에 변화가 오면 그때의 나는 과연 나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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